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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조견당 연지와 작연도

hallyuforum | 2014.10.08 21:23 | 조회 405
조회 : 637  
강원도 영월군 주천에 가면 2백 년 된 고택이 있다. 조견당(照見堂)이라는 당호를 가진 이 고택에는 연꽃이 피는 연지(蓮池)가 하나 있는데, 조견당 북쪽 사당터 자리 바로 옆에 있다. 4백여 평의 연지에는 홍련과 백련을 비롯해 노랑어리연꽃 등이 초여름부터 고택의 뒷동네를 환하게 수놓기 시작해 늦가을까지 청초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연꽃이 주는 정서의 깊이는 여느 꽃과는 사뭇 다른 면이 있다. 

조견당 주변은 원래 강이었다. 조견당 앞을 흐르는 주천강에 제방이 쌓아지기 전, 그러니까 1941년 전에는 조견당 앞에는 선착장이 있었고, 조견당 뒤 지금 5백년 된 밤나무가 있는 그 뒤로도 작은 실개천이 흘렀다고 한다. 조견당은 앞에는 큰 강이, 뒤로도 작은 개천이 흐르는, 앞뒤 모두 물로 둘러싸여있는 그런 집이었다. 주천에 물이 흔한 것처럼 조견당에도 물이 사시사철 넘쳐났다. 

왜정 때 일본 사람들이 마치 조선 땅을 영구히 지배할 것처럼, ‘안정된 농토를 확보해주겠다’는 미명 아래 주천강에 제방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 때 조견당이 결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사실 일제가 주천강에 제방을 쌓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천강가에는 자연제방으로 커다란 사구(沙丘)가 형성돼 있었는데, 그 사구를 따라 약 4km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수 백 년이 넘은 아름드리 시뻘건 적송이었는데, 아침이면 백로 떼가 날아오고 주변의 망산 절벽과 정자 등과 어우러져 비경을 연출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제방을 쌓게 된 이유가 되었다. 일제는 이 소나무가 탐났던 것이다. 이 소나무를 베어 뗏목으로 엮어 하류로 내려 보낸 뒤 일본으로 반출하고자 했던 것이고, 소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제방을 쌓았던 것이다. 참으로 애석한 가정이기는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 소나무 숲이 훼손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아마 대한민국 최고의 명승지가 되었을 것이다.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가 강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은 생각만으로도 몸에 전율이 인다. 

  
▲ 조견당과 연지


조견당은 앞이 제방으로 막히고 선착장까지 뻗쳐 있던 행랑의 일부가 헐리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몇 년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민군과 국군이 번갈아 조견당을 본부 겸 막사로 쓰는 바람에 참혹한 폭격을 맞고 오늘날의 안채만이 겨우 살아 남았고 사랑채와 행랑, 사당 등 나머지 부속건물들은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조견당의 연지는 그런 의미에서 조견당이 제 모습을 찾기 위한 참으로 눈물겨운 노력의 결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6.25 이후에는 주변이 대부분 논이나 밭 등 농지로 쓰였는데, 조견당의 연지는 오래 전에 있었던 맑고 투명한 명경지수를 연상케 하는 거의 유일한 ‘기억의 반추’, 혹은 옛집에 대한 ‘정신적 복원작용’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논 가운데 만들어진 조견당 연지는 봄부터 푸른 벼에 둘러싸여 특유의 운치와 향기를 조견당 구석구석에 불어넣고 있다. 

조견당 주인이 연지를 만들면서 연지 가운데 작은 섬 하나를 만들었는데, 이 섬에는 버드나무 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특별히 뭘 하고자 한다기보다는 그저 물 가운데 작은 섬을 만들면 더욱 분위기가 나고, 나중에 정자라도 하나 세우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한 것이다. 지금은 솟대 몇 개가 먼 하늘을 바라고 서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조견당 인근에 살고 있는 소설을 쓰는 후배가 그 섬을 배경으로 단편소설을 썼다고 연락이 왔다. 영월지역을 배경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인데, 그 속에 조견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조견당에서도 연지 가운데 작은 섬, 아직 누구도 이름을 붙이지도 않았고 또 그럴 생각조차 미치지 못했던 그 섬을 이야기의 중요한 플롯으로 구성한 그런 소설이었다. 당연히 그 섬에 이름이 생겼는데 그 이름이 작연도란다. 작연도, 지을 작(作), 인연 연(緣), 섬 도(島)자 작연도. 인간이 인연을 짓는 섬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서로 어떤 연관성을 맺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중에 소설을 받아보니 소설 제목이 ‘작연도’였다. 쓸쓸한 남녀의 사랑, 뭔가 아쉬운 여운을 남기는 그런 사랑이야기였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그 섬이 사진 찍는데 방해가 된다면서 없애는 것이 낫다는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 또 거기에서 자라고 있는 버드나무 수형이 기고만장해 그것도 베어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강력히 얘기했었다. 올 겨울 아무 부담 없이 그 버드나무를 베어버릴 생각은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또 그 연지를 아예 없애버릴까 하던 생각도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고향 후배가 이름까지 붙이고, 소설 제목으로 쓴 그 섬을 없앨 수가 있을까. 

앞으로 많은 독자가 그 소설을 읽고 그 소설의 중심에 있는 작연도를 찾아왔을 때, 이미 그 섬이 사라지고 없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작연도의 버드나무가 싹둑 잘라져 버린 채 밑둥만 남아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휑할 것인가. 당분간은 작연도와 작연도의 버드나무는 그대로 두어야 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름이 있다. 이름이 없으면 존재가 없다. 성경에도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말씀이 곧 존재요, 존재가 곧 이름이 아니던가. 이름 있는 것을 함부로 어떻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내가 주인이지만,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고 있는 나를 대신해 고택의 이 구석 저 구석을 챙겨주고, 때론 무성한 풀만 우거져 있고 아무런 인적도 없는 그 작고 볼품없는 자리에 이름을 붙여준 후배가 참 고맙다. 작연도, 부를수록 잘 지은 이름인 것 같다. 사람의 인연을 맺어주는 섬, 이제 그 섬도 당당히 이름을 가졌으니 조견당의 어느 자리 못지않게 조견당의 이야기와 역사 속으로 편입됐다고 할 수 있다. 이 가을, 가만있어도 낙엽처럼 쓸쓸함이 뚝뚝 떨어지고, 부엉이 우는 밤 빠르게 흐르는 구름 아래 외로움이 묻어나는 고택 어느 자리가 싱그럽게 살아나는 것 같아 괜히 생각만으로도 흐뭇하고 즐겁다. 다시한번 후배가 고맙다.

 

김주태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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