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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이야기의 보물 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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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나는 고택이라고 생각한다. 고택은 ‘옛집’이다. 오래된 집이다. 오래된 집에는 묵은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고, 당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과 사람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옛집에서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옛날얘기’는 우리 이야기의 원형이자 교육의 시작이었고, 이제는 문화컨텐츠로 불리워지는 문화산업의 발화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옛집에는 귀신이 많았다. 귀신은 무엇인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다. 두려움과 공포는 전통교육이 가능했던 하나의 전제조건이었다. 무엇을 하지 말라고 했을 때, 하면 안 된다고 했을 때, 이를 지키지 않으면 꼭 귀신이 등장한다. 그 귀신은 반드시 응징하고야 만다. 누구도 귀신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어린 아이는 귀신이 무서워 부모의 말을 따른다. 귀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부엌에도 있고, 잿간에도 있고, 큰 나무에도 있고, 성황당에도 있었다. 곳집에도 있었고, 물레방앗간에도 있었다. 귀신은 ‘판타지’의 시작이다. 귀신이 곧 판타지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어떤 어린이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다. 귀신인 거다. 귀신이 아니고서야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겠는가. 모든 판타지의 시작은 초인적이며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온다.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인간이 결코 도달 할 수 없는 꿈의 세계, 인간의 바람이 하나의 선망으로 굳어져 누구나 꿈꾸고 싶은 세계가 판타지가 아닌가. 우리에게도 귀신이라는 판타지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택은 문화의 원형을 간직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마당놀이를 보자. 마당이 있어야 마당놀이를 하는데, 마당 있는 집이 바로 옛집, 고택이다. 그 마당의 주인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양반인데, 그가 자신의 마당에서 사람들이 한바탕 놀 수 있도록 술과 안주,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장본인이다. 술과 안주를 배부르게 먹고 나면 사람들은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양반에 대한 욕과, 사회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신세한탄 같은 걸 늘어놓고 싶지만 양반이 빤히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그를 욕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오늘 최소한 술과 안주는 내어주지 않았는가. 그래서 탈바가지라도 뒤집어쓰고 웅얼웅얼 잘 들리지도 않게 양반을 욕하고, 승려를 욕보이고, 거기에 빌붙은 자들을 골려주는 놀이가 탈놀이, 마당놀이가 아닌가. 명절에는 다들 마당에 모였다. 돼지도 한 마리 잡고 소도 잡았다. 내장을 꺼내 순대도 만들고, 아직 덜 익은 사태 한 점을 크게 베어내 막걸리 한 사발을 쭈욱 들이키는 풍경은 나의 어린 시절 명절의 선명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다. 술과 음식이 있으면 놀이가 따르고, 놀이에는 노래가 있어야 하고, 소리가 있으면 춤이 덩실 나오게 돼 있다. 어린애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팽이치기며 재기차기, 자치기 등으로 어른들을 귀찮게 하지만, 그것도 명절풍경의 빼놓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예식장에서 면사포를 쓰고 결혼하는 풍습은 6,70년대 이후 문화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혼인을 했을까. 강원도 영월군 주천에 가면 2백 년 된 고택이 있다. 조견당이라 불려지는 이 집에는 백 년도 더 된 오래된 혼례복이 있다. 이제는 너무 낡아 사용할 수도 없지만, 한때는 이 동네 처녀 총각들이 거의 모두 예외 없이 이것을 사용했다. 넓은 대청마루에 초례청을 차리고 신랑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오랜만에 보는 맛난 음식과 친지간의 반가운 상봉으로 즐거운 잔치가 열리는 것이다. 대청이 있어야 혼인을 하고 마당이 있어야 잔치를 치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고택을 잘 활용하면 참 좋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쓰는 게 잘 쓰는 것일까. 집이 크고 방이 많으니 사람들을 재우면 될 것이다. 그것도 가능하다. 옛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내림음식이 있으니 그걸 상품으로 개발해 팔면 돈이 될 것이다. 된장, 고추장, 간장을 판다, 그것도 나쁠 건 없다. 나는 옛집에 묻어있는 이야기를 발굴해 그걸 소설로 시로, 시나리오로, 희곡으로 만들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바탕으로 에니메이션으로 제작하면 재미도 있으면서 훈훈한 감동을 주는, 교육적이고 교훈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고택의 존재이유는 고택 그 자체이기도 하려니와, 고택에 담겨 내려오는 정신과 철학, 이야기가 제일 귀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요즘 누구나 문화산업을 미래산업이라고 얘기하고 있고, 그 미래산업의 핵심에는 스토리, 즉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는 미래문화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고택을 한번 가보길 바란다. 고택을 그저 오래된 건축물로만 보지말고 그 집 사람을 한번 만나보길 권하고 싶다. 비록 칠순, 팔순의 노인이 뭐라 잘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웅얼거리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기 바란다. 거기에 대박을 터뜨릴 이야기가 고구마 넝쿨처럼 줄줄이 딸려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김주태 전문위원 김주태 전문위원은 MBC 보도국 네트워크팀 차장으로 근무중이며,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이사를 맡아 우리 문화의 보고인 고택 지키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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